2009년 8월 9일 일요일

[황매산] 지금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눈부시게 화려한 스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은막의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잊혀진 배우를 그리워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사랑도 네가 눈부실 때는 얼마든지 관대하다.

그러나 네가 조락할 때는 의도하지 않은 이별을 늘 염두에 둔다.

슬퍼지만 그게 대부분의 현실이고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 그러한 차가운 현실을 박차고

이미 은막 뒤로 사라진, 한철 지난 황매산으로 향한다.

철쭉이 져버린 뒤의 황량한 황매산,

네가 조락해도 그리워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휴일 서울의 새벽은 늘 서울이 아닌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가끔씩 그만한 시간에 출근을 한 적이 있어도, 산행하는 날의 시간은 특별하다.


그렇게 산행은 항상 집 앞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고속도로는 예상 밖으로 시원하게 뚫린다.


대전-진주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시간이 단축된 점도 있겠지만,

정체없이 내달린 덕에 예정 시간보다 30분일찍 등산초입인 장박마을에 도착했다.


시작은 늘 긴장을 동반한다.

초반상태가 좋아야 마지막까지 잘 나간다.


960봉을 지나 군데군데 철쭉군락지들을 본다.

물론 텅빈 가슴들이다.


뼈만 앙상한 가지, 눈부시게 화려했던 시절의 처절한 잔재들,

아무도 그들에게 눈길한 번 제대로 주질 않아도 나는 그들과 침묵의 대화를 한다.


황매봉으로 오르는 길은 억새군락이다. 내 키보다 큰 풀잎들이 눈을 가린다.

살며시 젖혀보니 햇살을 받지 못해 검게 썪어가는 흙이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드디어 해발 1,108미터 황매봉 정상이다.

멀리 합천호가 보이고, 상봉, 중봉, 하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멀리 합천호 위로는 삼봉의 그림자는 있지만 매화는 없다.

그래도 너는 충분한 장관이다.


정상을 지나니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온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초원지대인 이 높은 고도에 차들이 빽빽하다. 오프로드동호회모임인 듯 하다.


영화촬영세트장을 지나 약3키로 정도 예상했던 하산이 의외로 쉽게 끝났다.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샛길로 빠져나온 탓도 있지만 생각보다 쉬운 길이었다.


길 가의 코스모스, 가을을 알리고 있고 귀경길도 예상외로 순탄하다.

드디어 서울이다. 예상보다 2시간여를 단축했다.


남겨둔 모산재황포돛대바위, 그리고 누군가의 순결을 시험해 볼 순결바위

다음 기회에 꼭 한번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아쉬움을 접어둔다.

미련이나마 있어야 다시 기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비록 눈부시지 않아도 지금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황매산.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3박 4일간의 느린 대화



1. 첫쨋 날 - 노고단에서의 첫날 밤


서울을 떠나는 날의 하늘처럼 마음도 조금은 무겁게 출발했다.


서울, 경기 지방의 호우경보와 충청, 강원 일대의 호우주의보, 비록 지리산이 있는 남쪽은 별 일 없다하지만 유난히도 변덕스러운 올해의 장마전선이 나의 산행을 별 일 없이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출발시간에는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08:50분 서울역을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기까지에도

생각보다 많이 젖지는 않았다.


지리산으로 다가갈수록 하늘은 점점 더 밝아오고 더불어 기대감으로 설레는 마음의 고동소리도 높아졌다.

그런데 그런 설레임도 잠깐, 곡성즈음에 이르자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씌우더니


마침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노고단 입산부터 통제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졌지만

기차가 구례 구역에 도착할 즈음에는 검은 구름만 가득할 뿐,


조금 흐린 빛으로 잠잠해졌다.


구례읍에서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는 막차를 제외하고 두시간 간격으로 배차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14:00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어서 14:00시에 떠난 차를 타지 못하고


막차인 17:00차를 기다려야했다.


막간을 이용하여 식사를 마치고 멀리서 구름에 쌓인 노고단을 바라보니

마치 가소로운 듯 조롱이라도 하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고단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 동행하는 많은 사람들의 낯빛이 한층 친숙하게 다가온다.


구비구비 돌고 돌아 오른 성삼재에는 짧은 걸음으로 다녀가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고, 보슬비는 간간히 초행길의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기엔 충분했다.


노고단 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이미 포장이 다 되어 있어 산행같은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노고단을 끼고도는 운무는 여기가 땅에서 아주 많이 올라온 곳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어 신비감을 더했다.


산장에는 미리 올라온 사람들로 붐볐고 이미 예약을 한 덕분에 일찍 자리를 배정받아

지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사실 전날, 휴가를 맞이하여 후배들과 늦게까지 한잔하는 바람에 수면도 부족했고

체력도 완전히 바닥에 가까웠기 때문에 내일 산행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휴식이 우선이었다.


서둘러 취사장으로 갔는데,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고도가 높아서 기압의 영향으로 쌀이 설익는다하여 돌덩이를 코펠 두껑에 얹어 누르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대충은 흉내를 낸 것 같았다.


설익은 밥에다 라면까지, 게다가 누룽지에 숭늉도 더하니 그야말로 꿀맛이다.

안개 자욱한 고지에서의 따뜻한 커피 한잔, 지금도 그리운 향기가 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산행을 대비하여 일찍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여기는 다행히도 예약이 되어 있어 그나마 잠자리 걱정없이 편히 지낼 수 있지만,


중간 기착지인 벽소령에는 예약이 되어있질 않은데다가

좋지 않은 기상관계로 자칫 산행이 통제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에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는 가늘어진 듯했지만 안개는 여전히 자욱해 10미터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2. 둘쨋 날 - 임걸령, 노루봉, 날라리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벽소령


부산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씨가 좋아진 듯,

사람들이 서두르는 것 같았으나, 직접 나서보니 그리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무작정 출발을 시도하는 듯했다.

안개는 그칠 줄 모르고 가는 빗줄기도 줄기차게 추적대고 있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그들의 뒤를 쫒았다.

초행 길이다보니 길이 익은 사람들의 경험이 필요한 때문이기도 하였다.


돌계단을 올라 다다른 노고단 정상에는 비바람이 더욱 기세를 더했다.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긴 했으나 나쁜 일기 탓에 제대로 나올지가 문제다.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으니 마음까지 흔들린다.

이 상태로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섰지만 그래도 이왕 내친 걸음,


뒤돌아 설 순 없었다.


천왕봉으로 향해있는 표지판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갔다.

노고단을 벗어나니 나무와 돌과 풀잎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할 때까지 바람은 더 이상 거세어지지 않았고

빗줄기는 다행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연하천 산장에 이르렀을 때에는 아주 잠깐이기는 했지만 햇살이 구름사이를 비집고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듯,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볍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벽소령으로 향했다.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며 빗줄기가 굵어진다.


어디가 어떻게 닮아서 그들이 형제봉인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잘 정돈 된 길을 걷는데

불현듯 온 길을 되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제자리서 빙빙 돌고 있는 느낌,


아마 불안한 마음 때문이리라. 인적도 드물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기다리니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계속 그대로 앞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한다. 뒤를 종종 따라가니

이윽고 벽소령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에 마음이 놓인다.


가까스로 도착한 벽소령 산장에는 폭풍우를 피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경기 북부지방에 폭우로 다시 임진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소식이 라디오로 들린다.


그 부근에서 온 사람들, 연신 가정의 안부를 묻고자 하지만 전화는 연결이 되질 않고

그들의 얼굴에 여기 저기 근심의 빛이 어린다.


취사장에 가보니 수행을 하기위해 산사를 찾아다니는 스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행의 계속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일부의 사람들은 산행을 포기하고 의신마을로의 하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장 관리인이 내일 입산이 통제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개인출발을 금지시켰다.

귓가를 울리는 바람소리에 목조건물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늦은 밤, 밖으로 나와보니 빗줄기는 다시 약해졌지만

바람은 나를 하늘로 올려 보내려는 듯, 더욱 기세가 등등하다.



3. 세쨋날 -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세석평전,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장터목


엎치락 뒤치락 선잠을 깨고 새벽에 일어나보니 비는 좀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하다.

잠시 머뭇거렸으나 다행히 입산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아 몇몇 사람들이 출발을 서두르자


덩달아 베낭을 서둘러 메고 또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섰다.

벽소령을지나 세석으로 다가갈수록 바람도 잠잠해지고 비도 그쳤지만 안개는 여전히 자욱했다.


한치 앞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게 가득한 하늘,

몇개의 봉우리를 지나고나니 정상의 평지에 고즈늑히 자리한 세석산장이 보인다.


날씨가 이제서야 개일 기미를 보이자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짙은 먹구름과 안개가 순식간에 바람에 밀려 사라지면서 햇살이 땅으로 내리 꽂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일제히 "아!"하고 탄성을 연발하면서 평생 처음보는 신비한 장관에 넋을 빼앗겨 버너의 불꽃이 밥을 태워가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자연의 오묘한 신비에 잠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구름과 안개가 산 전체를 덮어버려 재차 보이지 않게 된 길을 한걸음 한걸음 장님이 코끼리 만지 듯 가늠하면서 나아가야했다.


그나마 햇빛을 보아서 마음이 놓여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

"반갑습니다"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긴장되고 서두르는 마음에 건성으로 "예"하고 대답만하고 말았으나

세석을 지나면서 나도 그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정상에 늘어 선 고사목들이 꼭 살아있는 듯한 몸짓으로 일행을 반긴다.

분명 죽어 있어도 죽은 것들이 아니었다.


장터목에는 이름 그대로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처럼 노고단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산행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천왕봉에서 새로이 시작하여 노고단으로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 방향의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비바람은 다시 강해지고 천왕봉 일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조바심을 안고 내일 새벽 이른 출발을 위하여 잠을 청했다.


잠결에 사람들, 어제의 천둥번개로 두 사람이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악천후로 헬기도 뜨지 못해 치명상을 입었다고 하고, 그 중에 한명은 결국 죽었다고 한다.


원하던 장소에서라도 원하지 않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편치 않은 종말이리라.

전국의 비 피해 소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어수선하고, 무사 귀가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센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잠자리가 수월했다.


노고단에서는 미리 예약을 했고, 벽소령에는 예약이 되어있지 않았었지만 노고단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산행을 포기하게 되어 그들의 예약권을 넘겨 받았었기 때문이다.


여기 장터목도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자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좁은 공간에 함께 자는 사람들의 잠버릇들이 문제였다.


코고는 소리, 이빨가는 소리, 잠꼬대 소리, 누군가로 착각하며 껴안는 사람들은 그렇다쳐도,

내 옆에 누운 사람, 덩치는 씨름선수처럼 건장한데 그 사람 발이 내 얼굴 위에서 흔들린다.


그가 방향을 거꾸로 누웠기 때문인데, 밤새 그의 발냄새를 참아가며 힘든 잠을 청해야 했다.

내일 일출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었기에 일단은 서둘러 자야한다.



4.네쨋날 - 제석봉, 천왕봉, 법계사, 중산리계곡, 칼바위


산행을 마무리하는 날이어선지 어제, 그제 이틀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일출을 보기위해서는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난 시간에는 벌써부터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바람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흔드는데 빗소리는 들리지 않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오류였다.


밖으로 나서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바람은 지형적 영향인지는 몰라도 더욱 기세가 등등하다.

아쉽게도 일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사정이 그렇다면 밤눈도 어두운데 보이지 않는 길을 위험을 감수하며 올라갈 이유는 없었다.

그나마 주위의 경관을 아쉬운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날이 좀 더 밝아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벽소령세석, 그리고 장터목에서는 샘터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미리 준비해 간 자바라물통(접이식물통)이 아주 유용했다.


시간이 지나니 주위도 점차 밝아온다. 베낭을 메고 가파른 초입을 오르기 시작했다.

철계단을 오르고 통천문(通天門)이라는 바위구멍을 지나 하늘로 올랐다.


드디어 말로만 들어오던 천왕봉, 비문(碑文)그대로 세상이 거기서 시작되었음을 알겠다.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고 먹구름도 심상찮게 몰려들어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다음 인연을 기약하고 이정표를 보니 대원사계곡백무동계곡, 그리고 중산리로 가는 길이 새겨져 있다.


중산리로 가야하는데 그 곳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안개가 솟구쳐 올라오고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지탱을 위해 메어져 있는 밧줄은 끝간데 없이 늘어져 있다.


사람들이 왜 온 길을 되돌아 다시 장터목으로 갔는지 이해가 되는듯하다.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기어들어 가야하는 두려움에 머뭇대다


마침내 감행을 시도했다.

시작하자마자 머리 위에서 바위가 구르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의 잦은 억수같은 빗물로 지반이 많이 약해진 듯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슴은 돌과 함께 천길 아래로 구른다.


한참을 내려가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위가 밝아진다.

햇빛도 비친다. 사람들도 있고 시야도 훨씬 넓어진다.


늘어진 마음과 함께 다소 지루한 듯한 하산길을 계속 재촉하니 멀리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햇살도 머리위에서 이제 나의 눈 속에 편안히 담긴다.


사흘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그 태양이 이처럼 반가울 줄이야!

그러나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던가?


잠시 반가운 그 햇살, 살갗을 태우기 시작하자

방금 지나온 그 운무속의 능선 길이 더할 수 없이 그리워진다.


칼바위를 지나 매표소로 빠져나오면서 다시 뒤돌아 천왕봉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깊고 검은 구름 속에서 신비한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얼굴은 구름 속에 감춘 채 허리춤에는 안개를 두르고

아무에게나 쉽게는 내 보여주지 않는 가슴인 듯,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진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오르니 며칠동안 지나온 능선이

꿈속의 길처럼 다시 눈 앞에 펼쳐진다.


차창 밖으로 휘영청 늘어진 달이 검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고

육십령휴게소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달이 어느새 내 가슴 속을 비집고 있다.


지리산, 비록 3박 4일간의 느린, 폭풍우 속의 대화였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전한 동행이다.



(2001.07.30 ~ 200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