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일요일

[금수산] 금수(錦繡)를 범하다.





산행을 앞둔 토요일 저녁, 2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 그리움들과의 해후,

중학교동창회로 늦은 귀가였다.


산행을 위해 겨우 잠을 청한 새벽, 깨어나 서둘러 챙기니

다소 쌀쌀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강바람을 지나 코끝을 스친다.

서울을 벗어나니, 가을은 벌써 흔적을 지우고 어느새 겨울로 들어 선 느낌이 확연하다.

헐벗은 산과 들, 바쁜 침묵으로 겨울채비들을 한다.


소통도 원활하고 몇번의 시행착오가 있어선지, 아니면 그동안 작업의 성과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초입구멍을 찾는데 애로사항은 없었다.


일거에 입구에 들어서니 예상 밖의 사태에 직면한다. 이른바 입산통제.

잠시 까치산(작성산)으로의 일정변경을 생각하다, 능강교에서 음모는 시작되었다.

음모는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한다는 철칙을 무시하고, 능강교아래,

능강계곡입구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여유로움을 위장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에도 여전히 얼음이 달려있었지만,

왠지 이 겨울에는 오히려 녹아있는 듯하다.


산책로같은 산행길,


적당한 온기와 포근한 포옹들,

정상으로 오르는 암봉은 조금 힘들다.

금수산 정상에 서니,

이황선생이 일찌감치 금수(錦繡)산으로 명명한 이유를 알겠다.


멀리 보이는 충주호의 물길, 한 쌍의 연인처럼 엮여있고

금수산은 은밀한 방관자처럼 한켠으로 널부러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적나라하게 너희들의 음행을 알겠다.

그 옆에서 까치산이 다가설 듯, 다가서지 못하고 훔쳐보고 있으니,


관음증은 병이 아님을 알겠다.


하산길, 길은 얽히지 않고 그대로 뻗어있다.

합의된 교접은 이부자리를 흐트리지 않는 법, 잘 정돈되어 치워진 자리처럼 곧다.


가파른 경사를 뒤로하고 무사히 하산한다.

서울로의 귀경길, 예상대로 정체가 심하다.


금수(錦繡)를 범한 이후, 그 중독된 맛으로

당분간은 산허리를 배회할 듯하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