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을 꿈꾸며 움직이는 발걸음은 가볍다.
아마도 짐을 부리는 인부의 등짝이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그 느낌이랄까,
서둘러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때문인지, 이미 약속된 장소에는 마음이 먼저 가 있다.
예정된 시간에 기차는 떠나고, 나는 예정되지 않은 시간 속으로 간다.
차창으로 비껴가는 산과 나무들도 이제 한꺼풀 벗을 채비들로 한껏 상기된 표정들이다.
나보다 더 붉으면 부끄러움은 자연스레 그 속에 감춰지는 것인가.
일행과의 대화가 점점 속살로 들어간다.
5시간여의 고착은 권태를 동반하고, 이윽고 무감각으로 잠길 무렵, 기차는 종착역을 알리고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광주현지의 회원들이 반갑게 맞는다.
관심이 같다는 것은 이미 절반의 동행이다.
군더더기는 필요없고 곧장 첫번째 그리움으로 간다.
길가에 줄지어 도열한 메타세콰이어가로수길,
"살아있는 화석식물"이라고 할 만큼, 오랫동안 서 있는 자태가 하늘을 찌르듯이
기세등등하다. 길이 끝날 무렵,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언젠가 어느 길 위에서의 그 방황처럼..
담양대나무테마공원,
남아있는 테마는 대나무뿐이고, 영화촬영지로서의 모습들은 많이 퇴색되어 있다. 이미 잊혀진 화려함 뒤에는 감동하지 못하는 편린들만 즐비할 뿐, 겉으로보기엔 "전설의 고향"촬영지정도의 명색만 겨우 유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니 느낌이 다르다.
누군가 대나무의 몸통을 흔드니, 빈 속을 관통하는 설움이 쏟아져 나온다.
바람보다도 더 큰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뱉지 못한 그리움들이다. 정절이전에 인내를 가진 풀이다. 오죽하면 60여년만에 한번의 꽃을 피우고 절멸의 길로 추락하겠는가.
화려함은 누구든 오래도록 유지하고픈 욕망이 아니던가. 가장 화려한 순간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뒤돌아 설 수 있는 그는, 분명 나와는 다른 의미이다. 어쩔수없이 나는 댓구멍으로 하늘을 볼 수 밖에 없는 존재인 듯하다.
대나무 사이사이로 빼곡히 들어 선 차나무,
자웅동체로 한몸이면서 열매와 꽃이 같은 시기에 달리 맺고 핀다고 하니,
그 절제된 그리움들이 신비롭다. 그렇게 지금까지 유일한 방법으로 남의 눈치를 보지않고 견뎌 온 그 줄기참이 대못박이처럼 어리석고 용렬한 나를 나무라고 있다.
한몸으로 꿈꾸는 자들이다. 그 누구인가처럼..
걸음을 옮기니 대나무길 끝에 소나무숲이 나온다. 대나무 진을 먹은 뱀처럼,
소나무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온 길을 돌아 다시 또 그 메타세콰이어가로수 길을 만난다. 몇번이나 되풀이해도 질리지 않는 그리움들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위해 몇 장의 사진으로나마 그의 모습을 담는다. 깊이야 덜하겠지만 눈이 멀고 귀가 멀어질 즈음에도 다시 기억하기에는 그나마 위안이 될 성싶다.
드디어 속세를 떠난 물맑고 깨끗한 그 원림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소쇄원으로 향한다. 그리움이 너무 강해서 쉽게 삭이지 못하든 사람들이 조용히 은둔하며 노래를 만들어 부르던 여유가 남아있다.
자연에 겸손하며, 담으로 구분짓지 않고, 한단락을 이으며 꽃으로 풀어가는 산책들이 또 하나의 곡조을 만들어내고 있다. 48영이 아니라 108영이라고해도 오히려 부족할 듯하다.
달과 해를 마주보게 하여 그 조화를 도모하는 장쾌함이 좁은 공간에서도 넓은 안식을 주고 있다. 제월당과 광풍각의 어울림 속에서 잠시 자연과의 합일을 느낀다.
늦게 도착해서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해거름이 지고, 광주호 물곁으로 불어내려오는 산바람이 객들의 어깨를 움츠릴 즈음에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 식영정으로 향한다.
간만의 객을 만난 주인장의 외로움을 달래는 듯한 안내자의 설명이 한층 흥을 더하고 달도 떠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넓은 호반 위로 긴 그림자들이 늘려있다.
죽순과 죽술, 죽회무침, 그 밖의 대나무로 범벅이 된 거나한 상차림을 저녁으로 하고, 숙소로 향한다. 얼마되지 않은 저녁이지만 시골도시의 밤은 꽤나 급하게 저물고 있다.
금호리조트에서의 일박은 일행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 온천까지 가까이 있어 일거에 피로감을 해결하기엔 충분한 조건들이다.
다시 새로운 새벽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서도 쉬지 않는 그리움들, 하얀 소복을 하고 산허리춤에 걸려있다. 한쪽은 벗어내리려 하고, 또 한쪽은 끝까지 버텨내는 산파극이다.
잠드는 시간이 아까워서일까, 일행들 모두 예정보다 빨리 준비를 마치고 제한된 시간에 예정된 것들보다 예정되지 않은 그 많은 것들을 담으려는 욕심하나로 또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 쪽 지리에 밝은 친절한 일행의 도움으로 몇가지 볼거리를 추가하고,
물염정적벽으로 향한다.
김삿갓의 맛이 얼큰한 장맛이었던가. 일행중 한명의 표현으로 김삿갓의 동상을 한번 더 유심히 살펴보니, 아..바로 그 장맛이더라.
아침햇살을 받고서서인지 적벽은 붉지 않고, 다만 깍아지른 절벽만이 깊은 강물 속으로 머리를 쳐박고 있다. 역시나 여전히 말은 없는 채로...
동복댐을 지나 천봉산 대원사로 향하는 길에 주암호로 발길들이 자연히 담긴다.
길가의 벚꽃들, 이미 철이 지나버렸지만, 가을은 또 그 색다른 모습을 비춰주고, 호숫가의 조각공원들 침묵의 대화들로 분주하다.
"온고지신'이라는 무표정한 5개기둥 위의 인물작품들을 놓고 잠시 해석에 열을 띤다.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그 애매한 시선들..
예술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관심과 자본을 동원한 국내유일의 군립미술관이라는 백민미술관을 잠시들러 급하게 훑고나서 들른 천봉산 대원사의 티벳박물관에는 티벳에서 온 향기들이 있다.
15미터에 달하는 수미광명탑과 탕카라는 밀교미술들, 그 속의 얼굴들은 우리보다 솔직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처가 안고 있는 사람의 모습들이 내가 가장 동경했던 바로 그 자태들이다.
이제 드디어 여행의 크라이막스, 운주사, 그 절정으로 내닫는다.
몸이 피곤했던지 잠시 감았던 눈을 뜨니 벌써 운주사 초입에 와있다.
아뿔사 그 사이 감은 눈때문에 잃어버린 채 스쳐 지나간 것들,
놓쳐버린 인생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누굴 탓할 것인가.
운주사로 향하는 그 밭과 들과 길 위에 아무렇지 않게 늘어선 불상과 불탑들, 모양도 가지가지, 자세도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질서들이 느껴진다.
와불을 세웠느니 세우지 않았느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그 불상이 누워서 보고 있는 하늘 아닐까. 그 끝을 바라보니 구름이 머물고 있다. 아마도 편안한 어머니의 그 품처럼,..
누워있는 것들이 일어선다면 세상이 달라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 것이라는 기대는 한낱 또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닐런지. 누워있는 것들은 누워있는 그대로 나는 보고 간다.
대웅전을 뒤로돌아 산길을 조금 오르니, 모과처럼 제멋대로 생긴 덩치 큰 바위가 나온다. 그 위로 올라서니 운주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 어쩌면 항해를 위해 불러 모은 사공들로 삼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모두가 개성이 강한 것들이니 너는 분명 포용력이 넓은 가슴인 것 같다. 너와 나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평등이다.
내려오는 길에 눈에 들어 온 석탑안의 불상, 대원사의 것과 같아 보이는데,
치장이 없다. 소박함이 더 진실같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윽고 볼거리들은 끝났다. 남은 것이라고는 넘치는 느낌들과 약간 서둘러야했던 아쉬움,
그러나 1박2일의 일정으로는 참 많은 것을 소화해낸 느낌이다.
과식을 해도 체하지 않은 즐거움, 아마도 오늘같은 날은 쉽사리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다.
돌아오는 열차안에서도 어제의 그리움들을 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아진 그리움들로, 서울로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새로운 일탈을 도모한다.
그리움은 그렇게 쉬지도 않는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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