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5시, 간밤의 천둥과 폭우는 잠잠해진 듯하다.
알람을 1단계 05:00시, 2단계 05:30분, 3단계 05:45분으로 설정해둔 덕에
다행히 1단계에서 잠이 깨어 시간여유는 있을 듯 했다.
그러나 새벽뉴스를 들으니 중부지방이 호우경보란다.
예상 강우량이 폭우수준이어서 단단한 대비가 필요했다.
공휴일, 서울의 새벽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낯설다.
이런 기회사 아니면 서울의 또 다른 이런 한가한 얼굴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거리는 한적하고 흐린 하늘이었지만 새벽공기는 상쾌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약속장소의 익숙한 버스는 출발을 10분정도 지연된
07:10분에 대야산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푸렸고, 등 뒤에서 끈질기게 발목을 붙들었지만
그들보다 빠른 걸음 덕에 비구름을 피할 수 있어서 계속 이런 상태라면
최적의 산행조건이 될 것 같았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목적 또는 여행을 떠나는 차량 탓인지 고속도로의 정체가 좀 있었지만,
그러나 큰 지체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다. 목적지에는 거의 다 온 듯한데,
버스 차량기사가 갈팡질팡한다. 길을 잘 모르는 듯 하다.
마치 한번 활주로진입에 실패한 항공기가 궤도를 선회하듯이 충북과 경북일원을 한바퀴 선회해서야 겨우 진입로를 찾을 수 있었다.
예상 밖의 돌출상황으로 일이 이렇게 꼬이다보니 산행은 12:00가 넘어서야 시작되었고, 금새 비를 뿌릴 듯한 날씨와 4시간 30분이라는 등반시간 등 여러사정상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용추폭포는 용이 아마 오랫동안 또아리를 틀고 주거한 듯하다.
깊이가 10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누굴 닮아 얼마나 움직이길 싫어하는 놈일까 싶다.
승천할때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누구에겐가 마지 못해 끌려간 듯, 두개의 구멍사이로 질질 끌린 자국이 선명하다.
밀재는 그냥 올라 갈 곳이 아니다. 누군가 꼭 등 뒤에서 밀어주어야하는 곳인 듯, "밀어서넘어가는 고개"라는 의미의 "밀재"이리라.
대야산 정상을 앞두고, 모든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큰바위 옆에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대야산정상, 해발931미터에 도달했다. 사방의 세상이 발아래 놓여 있다.
주위에는 멀리 운무에 걸린 희양산, 허멀건 가슴을 드러낸 백암산을 조망하고
피아골로의 하산을 재촉했다. 빗방울이 금새라도 떨어질 듯하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피아골이라..너와 나사이의 골이 이리도 깊었더란 말인가. 설혹 살아가면서 골이 생기더라도 메우ㅠ기 힘들 정도의 골은 파지 말아야겠다. 화해의 마음으로 다짐을 하고 서둘러 산행을 끝낸다.
버스로 돌아오니, 꽁무니를 쫒던 비구름이 그제서야 뒤늦은 설움을 토해낸다.
한걸음 앞서니 모든 장애들은 남 일이고, 기억에도 없다.
나를 놓친 비바람의 속내는 좀 서러울까.
서울로 들어서니 버스가 물속으로 돌진한다.
여기저기 물에 잠긴 소식이 들리고 사람들과 차들이 혼란스럽다.
생존의 터전에 큰 피해들은 없길 바라며
다시 도시의 산으로 귀환이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