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일요일

[거제도] 침묵을 깨는 소리, 소리들..




침묵으로의 여행,

자기 자신에로의 여정,

이것이 어쩌면 소리내지 못하는 그 아우성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머리는 하나가득 상념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걸어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이미 베낭을 메고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새해를 맞이하러 떠난 사람들의 뒷자리는 어느 정도 한적하다.

굳이 새로운 마음이 별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가슴에는 일년에 한번씩 맞이하는

일출도 그리 심각한 감동은 아니다.

내 가슴에 새로운 해를 담아야 하리라.

언제 어느 순간이 되었든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감동하리라.


출발의 서울역사의 요란한 소리들과 어울린 사람들의 발걸음들은 분주하고,

새벽에 도착한 부산역사는 아직 공사중..마무리를 하고 있는 현장조차 새벽은 적막하다.


오랫만의 바닷바람이 신선함으로 폐부 깊숙이 박힌다.

비로소 잠든 의식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복잡한 사고는 단순한 시선 속에서 집중하려하고 있다.


두 눈에는 멀리 산들을 기어오르는 삶의 불빛들을 응시하고,

길게 늘어선 광안대교의 화려함이 이제 새로운 대화로 안내를 한다.

나의 아우성들이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순간이다.

아직 자갈치시장의 불빛들은 여전히 침묵..그러나 그 속에서도 이미 깨어있는 자들이 있다.

뱃고동소리와 바쁜 화물차들이 비린내를 싣고 달린다. 오랜만의 향긋함이다.


부산항,


거제로 향하는 배는 아직 출항전..바쁜 마음에 출구를 나서니, 제지를 한다.

신분확인을 요한다. 그렇군 배를 타는 일은 자신의 확인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티켓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니, 새로운 내가 하나 더 보인다.

익숙함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이 여기서는 왜 갑자기 새로워지는 것일까.

익숙한 길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낯설음 속에서 더욱 분명한 내가 있음을 안다.

그렇게 나조차 몰랐던 나..


고속페리, 비싼 값을 한다. 물위를 구름처럼 걷는다.

햇살조차 눈부셔 무거운 눈꺼풀을 짓누른다.


장승포항,


기대했던 것만큼 분주하진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거제문화회관이 학처럼 날개를 펴고 있다.


부두 갑판 위로 오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에머랄드빛 노스탤지어의 향수,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



몽돌해수욕장,


고독은 욕되지 않고,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이라..

영광으로 충만된 얼굴들이 모나지 않게 둥글다..

고독을 던지니 파문을 일으키며 잠긴다..

진실은 그렇게 언 땅뿐만 아니라, 시린 바다에도 묻혀있다.

누가 그 진실을 알까.


어느 폐교,


친구가 꿈꾸고 있는 예술인촌, 창작마을의 후보지..

버려지지 않은 절경에 버려진 건물..

어울리지 않게 아까운 곳에서 소외되고 있다.


청마 유치환의 생가,


죽으면 소리하지 않는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던 그의 다짐도 무색하게

그가 사라진 자리, 소리들이 선명하다. 소리내지 않는 자의 발걸음은 흔적조차 없는 법,

꾸며진 집과 돌담들이 그의 유언과는 상관없이 살아있는 자들의 소리로 남아있다.

그가 묻힌 곳으로 가니, 거기에 무언가가 눈에 뜬다.

목숨이란 불꽃이 장작을 옮겨붙는 것처럼,

타버린 재는 이미 흔적이 없지만 불꽃은 또다른 매체 위에서 더욱 선명한 법,

그래 당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열렬히 불타고, 또 태우고 있음을 알겠다.


사모곡 속에서 여전히 간절한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 그리움처럼 불현듯 소홀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여인의 품속도 대신 할 수 없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폐왕성지,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리라.

한때의 화려함이 땅끝에서 허물어져 있음을 본다.


그래도 꿈꿀 수 있는 순간은 행복했었으리라.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을 때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 법,

군데군데 널부러져 조각난 실패한 꿈들을 본다.

노력한 흔적들은 치밀하고, 그 치밀함이 비록 끝을 보진 못했지만,

이 곳은 어떤 음모를 하기엔 안성마춤인 곳 같다.

사방을 둘러보니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망만으로도 충만했을 산과 바다들이 실패한 자들을 위로하기엔 충분하다.

여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이므로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여전히 꿈꾸는 소망들이 수면 위를 수놓고 있다.

그 소망들조차 변화무쌍하게 시시각각으로 색깔을 달리해,

그 간사함조차, 사람을 닮아 있다.


숙소로 예정된 곳, 시인의 마음,


명물로 유명한 굴구이에 정신이 팔려 이 곳의 장관인 일몰은 놓쳤지만

나를 반기는 캠파이어의 잘타고 있는 장작들, 일몰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하다.


새로운 아침,


여기가 바다인지 큰 호수인지,

여전히 연이은 바람한 점 없는 날씨덕에 수면위의 작은 미동조차 찾을 수 없다.

너 속에도 이런 네가 있을 줄이야..드디어 침묵이 소리를 낸다.

나 속의 다른 내가 낯설음을 만나,,너 속의 다른 너와 조우하여

이렇게 소리가 될 수 있음은 누군가 분명 그 속에 진실을 묻었기 때문이리라.

청마가 묻은 그 뜨거운 노래들, 아마도 땅이 아니라 바다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움으로 가는 길은 바로 바다로 가는 길, 그 길 위에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끝없는 길,

굽어진 가슴들은 편안한 사연들보다는 훨씬 우여곡절이 많다.

그 탓일까..바다를 끼고도는 해안선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할 듯하다.


적당한 타협이 필요한 시간, 이제는 지금까지의 소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할 것이므로 발걸음을 돌리기로 한다.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해돋이 고개를 돌며

작별을 예정하고, 다시 만날 기약들과 함께 침묵으로의 여행,

나 자신에로의 여행, 그 끝에 나는 다시 소리가 되어있다.

그리움의 그 끝에서 충분히 그리워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 출항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