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일요일

[관악산] 너조차 흐르더라.




산행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초대를 했다.

주도적으로 초대를 한다는 것은 마음같이 수월하지는 않다.

묻혀서 움직일때는 그저 생각없이 따르기만 하면되는데, 내가 주인이 되니

숟가락하나 반찬 한가지에도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한 몸 편한대로 그저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는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이미 익숙하지 못한 형식이다. 한 가지, 두가지 신경을 쓰다보니, 그동안 나를 위해서

여러 산행을 준비하시고 이끌어주신 동호회분들의 고마움이 절실해진다.


여느 때와는 다른 여유있는 출발이다.

일요일 10시 집합, 평소의 7시, 8시 즈음의 출발에 능히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10시 출발은 너무나 여유롭다. 그 탓이었을까. 멀리 갈 때에는 어김없이 시간을 지키는 분들도 가까운 곳이라 방심해서인지 조금씩 다 늦다.



초대를 해놓았는데, 손님이 오지 않으면 그보다 황당할 일도 없지 싶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분이 참석을 못하시고, 한분은 너무 늦은 도착 때문에 기다릴 수 없어

산행은 아쉬운 이대로 시작될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한 사람만큼이나 익숙한 산은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도 공백이 길어지면 낯설어지는 만큼, 이미 산도 내게는 많이 멀어진 듯하다.

낯익은 길들이 비록 사소한 차이이기는 하나 조금씩 어긋난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등산로는 발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이 많은 만큼, 사람들을 유혹하는 손길도 많아 곳곳에 음식, 술들을 파는 노점상들,

생존을 위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한적함을 고대하는 산행에서의 조우는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삼막사로 향하는 삼거리로부터 망월사로 향하는 오르막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다소 뜸하다.

예전에 내게 익숙한 그 고요함, 그대로는 이제 찾아 볼 길이 없지만,

그나마 미약하게나마 그 기억들을 조금은 되살리게 한다.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하고, 사랑조차 흐르게 한다지만,

한참이나 지난 후에 희미한 기억들의 흔적이나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인 듯 하다.



무너미고개를 지나, 오늘 산행의 백미, 팔봉능선에 들어선다.

사실은 관악산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는 얼마나 당황했었던지.

산을 알지못한 내게는 팔봉능선의 위엄과 중압감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억속의 무게는 없고 이젠 가볍게 와 닿는다.

군데군데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가파름이 심한 내리막길이 어렵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하다.

그만큼 내게도 익숙했던 경험들이 있었나보다.



풍수학적으로 화산(火山)이라고 하나, 너는 열정의 감정 그 자체인가보다.

그런 열정을 달래기 위해 경복궁 광화문에는 허세 좋은 해태를 세우고, 그나마 안심하지 못해

군데군데 냉정의 연못을 파두었나 보다. 그 열정과 냉정사이에서 우리는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삼막사의 말사지만 지금은 본사보다 덩치가 더 크진 연주암을 지나, 연주대로 오른다.

높은 곳에 올라야 그리움이 잘 전해지는 것이든가. 그런가 보다.

터지지 않던 핸드폰이 그 정상에서는 안테나의 신호음이 잡힌다.

연주대에서는 그리움도 통한다.



오봉으로의 하산을 시작한다.

이 하산길은 때를 잘 맞추면 서해의 낙조와 동행할 수 있는데, 시간은 제대로 맞은 듯하나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아쉽다..



서울대캠퍼스로 빠져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부족하나마 첫 초대산행에서 모두 무사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나의 초대를 넘어 늘 그렇듯이 그들은 이미 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흐르고, 산(山)조차 흔들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았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 였고,

기억을 되살리니 산은 여전히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