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일요일

[선자령] 절반만으로도 완벽한 것들..



버스가 궤도를 찾아 나선다.


예보는 강원도지역의 폭설과 도로사정의 장애를 호소하였지만,

출발하는 서울의 하늘은 바람도 조용하고 날씨도 많이 풀린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그리 큰 걱정은 접어도 좋을 듯하다.

버스는 어느덧 산행시작지점인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해 있다.


바람과 눈의 나라라는 선자령..

연이은 강설로 눈꽃은 황홀하게 피어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작 들머리에서는 바람은 그리 심각하진 않은 듯하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한걸음 한걸음 정상으로 오르니,

얼굴로 부딪히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바람의 방향으로는 마주하지 못하고, 등을 돌려 피하다시피 올라간다.

그런데 한 눈 가득 차들어오는 바람 속의 것들..나무는 모두 절반만으로 존재하고 있다.

줄기를 기준으로 바람쪽의 가지는 모두 잘려나간 듯,

그러나 그 것들은 애초부터 성장하지 못한 생명(生命)..

자세히보니 잔가지 끝이 그래도 바람을 향해 있다.


절반만으로도 완벽하게 살아있는 것들을 본다.

잠시 그 속을 가벼이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정상의 탁트인 전망..평원에서 둘러보는 주위는 한폭의 동양화 그대로다.

농담을 달리해 예리한 터치로 아무리 잘 묘사한들,

저 감동들을 무엇으로 생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바람을 그릴 수는 없는 일..그저 마주한 채로 느낄뿐이다.


발 밑에는 그리움의 흔적을 따라 물결처럼 바람의 족적이 선명하다.

그 길을 따라가면 아마도 어느 누가 몰래 지워버린 은밀한 기억들도

어느 골짜기에서 그 절반만으로 온전히 서 있을까.

확인하고픈 마음으로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바람이 깃들지 않는 곳의 나무들은 온전하다.

절반을 잃어버리지도 않은 채 모두가 겉으로는 완벽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바람이 잦아든 계곡에 들어서니, 벌써 나는 또 그 절반들을 잊어가고 있다.

진정으로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는 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 쉽게 굴절되어버리는 것들..그리움조차 위장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이 없으니 나머지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산 길은 애써 그리움을 처음부터 막아버리는 전략처럼 급격한 경사로 숨가쁘다.

그러나 그 길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저 밋밋할 뿐..


남애항의 바람은 선자령의 바람과는 판이하다.

서울의 하늘은 폭설이 온다는데, 이 작은 항구의 햇살은 봄날처럼 따사롭다.

하나의 그리움을 사이에 두고, 세상은 이렇게 다른 얼굴들이다.


서울로 들어서니, 폭설이 온다던 서울의 거리에 그 흔적은 없다.

알고보니 잠시 스쳐지나가는 시샘처럼, 한번 휘몰고 갔을 뿐이라한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온전한 일상,


절반만으로도 완벽히 살아내고 있는 그 솔직함들이

서서히 위선들을 지우고 있다.


온 몸으로 살아가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