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일요일

[용화산] 모두들 그렇게 왔다가 간다.




용화산, 미리 살펴본 바에 의하면

지네와 뱀이 싸워 이긴 쪽이 용이 되었다해서 용화산이란다.

어디가던 싸움이고 언제나 승자의 이야기만 진리처럼 가르쳐진다.

지네같은 사람과, 뱀같은 사람들 틈속에서 또 한주일을 이도 저도아닌 시간을 보내다,

그래 나도 한번 용이 되어보리란 각오(?)로 산행을 준비한다.


어제의 과음이 문제였다. 아니 산행을 떠나는 오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지네와 뱀의 싸움에서 그 승자를 확인하고픈 욕망으로 도저히 이대로 밤을 샐순 없었다. 급히 귀가를 서두른다. 이미 새벽4시를 향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자신때문에 역시 알람을 3단계로 조정했다. 1단계 06:00, 2단계 06:15, 3단계 06:30분,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06:15분 2단계 알람이다. 일으켜 세우는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잠시의 혼돈스런 환각 속에 다시 시끄러운 벨소리를 듣는다. 마지막 06:30분 알람이다. 게으름은 곧 후회다.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약속장소로 향한다. 드디어 출발이다.


파리가 용이 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빛이고, 구름이 무척이나 높다. 비교적 일찍 출발해서인지 그리 정체는 없다. 제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한 나는 아주 편한 자세로 잠을 청한다. 어쩌면 아직까지 그 곳에서 도사리고 있을 뱀과 지네와의 싸움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산행은 큰고개에서부터 시작했다. 한 40여분을 걸으니 정상이란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산행도 있구나 싶었다. 나에겐 참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평생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다 가는 놈도 있고, 부모 잘 만나서 평생 정상에서만 노니는 놈도 있고, 오늘처럼 40분의 산행 후에 정상을 쟁취하여 자만하다 뒤에 큰 코 다치는 나같은 어리석은 놈도 있다. 각자 자기의 몫인 셈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피니 온통 바위다. 많은 전설을 가진 많은 기암괴석이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 장수바위인 듯한 것을 가리키며 암벽등반을 하는 곳이란다. 내려다보니 거길 기어오를 정도면 아마도 오래살 것도 같았다.


능선으로 이어진 산은 그야말로 산에서 바다를 보는 느낌이다. 주위에 춘천호, 파로호가 내려다 보이고, 청명한 하늘 덕에 끝없이 늘어선 산맥의 층층들이 나를 향해 밀려드는 물결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다.


한참을 지나니 정체가 있다. 난코스다. 다리가 떨린다. 후들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힘껏 건너뛴다. 잠시 하늘을 날았다가 다행히 안착한다.


고탄령으로 향할까하다, 시간적인 문제로 안부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이윽고 누군가 뱀한마리를 목격하고 비명을 지른다. 지네와의 싸움에서 진 별볼일 없는 놈이다. 패자에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려다..호기심으로 쳐다본다. 뱀이 기어가다말고 나를 쳐다본다. 나를 지네로 보고 달려오면 어쩌나하고 멈칫 눈치를 살피는데, 다행히 그 놈이 알아서 내뺀다. 의지와 상관없이 승리다. 가끔은 이렇게 덤으로 사는 보너스도 있는가보다.


쉽게 정상에 다다랐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쉬운 정상길 때문인지, 어제의 과음탓인지 하산길이 순탄치 않다. 그래도 길은 끝이 있는 법, 출구(남들은 입구)에 다다르니 계곡 물이 시원하다. 아니 안도감때문에 더 시원하다.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하여 서둘러 귀경길로 나섰다. 노을이 찢어진 구름사이로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차가 서울로 들어선다. 서울의 강변도 어김없이 가을이다.

언제 태풍이 지나갔는가 싶을 정도로 지금 세상은 다시 차분하다.


모두들 그렇게 왔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