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의 산행이어선지 설레임은 산행전날 부터 시작되었고, 시간이 한참 여유가 있음에도
새벽같이 잠에서 깼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산행의 시작이다.
구파발역에서는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한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다.
아쉬운 가을을 놓치기 싫은 주린 사람들이 참 많은가 보다.
일렬로 쭉늘어선 버스정류장, 예상외로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택시를 타고
용산교장에 하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서둘러 입구를 찾는다.
상장능선으로 오르는 초입을 한번의 시행착오 끝에 찾아내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시작이 힘겨운데다 오랫만의 산행이어선지 호흡을 가다듬기가 벅차다.
코끼리모양의 능선이어서 상장능선이라는데, 가만히보니 이 놈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퍼져 누워있는 상이다. 그것도 북한산과 도봉산의 맛잡은 손을 뿌리치며 누워있다.
다정도 병이라 했던가. 그 심정, 알 것도 같다.
눈을 돌리니 한걸음지나지 않아 황금송들이다. 잎끝이 노랗게 물든, 확연히 주위의 소나무들과는 구분되는 집단 군락지인 듯하다.
낙엽이 가슴을 수북히 채우고 있는 소로, 적당한 조명과 드문 인적, 눈을 드니,
떡하니 버티고 선 큰바위 하나, 이름하여 왕관봉이라..
살짝 돌아설려고 하니 약간의 미련이 등을 붙잡아 암벽을 오르기로 한다.
한손에 로프를 감고, 나머지 손으로 바위벽에 버팅기며 긴장된 몸을 진정하며 겨우 올랐다.
오르긴 올랐는데, 설상가상 내려가는 것이 더 문제다.
눈앞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직벽을 피해 돌아서니 좀 더 땅과 가까운 곳이 나온다.
내려가는 길은 두 바위 틈새로 난 좁은 구멍, 로프를 허리에 메고 큰 히프때문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간신히 무사통과다.
한참을 지나니 영봉인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좁은 바위산을 오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모자가 바람에 날리고, 바람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의 비명이 요란하다.
미리 왕관봉을 접수했던 터라 영봉은 그다지 위협이되지 못한다.
가볍게 정복한 후, 육모정으로 향하는데, 경고판이 보인다.
휴식년제라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욕심은 여기서 접기로하고
우이동쪽으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뒤로 돌아보니 역시 그 모습이 새롭다.
사람들은 두사람이 모이면 싸우고, 세 사람이 모이면 나머지 한사람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그래서 선을 긋고 니편 내편, 좌우니, 진보니 보수니 등으로 색깔을 입히지.
그러나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선(線)이 결코 경계(境界)가 아님을 안다.
능선을 올라보라. 맞닿은 하늘과 땅이 어디 구분되어 있던가.
하늘과 땅사이에서 사람들이 그대로 연결고리가 되어 있어 산으로 가는 사람들은 색깔이 없다.
오직 한 몸으로 본질인 정상으로 향하는 절절한 그리움만 있다.
거기서 사람들은 산이 되고 하늘이 된다.
어디에 경계가 있는가.
2003.